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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깨물면 웃음이 빵…‘뉴트로’ 타고 온 할매들의 맛

신동아 2021-05-04 10:01
[김민경 ‘맛 이야기’] 흑임자, 팥, 콩가루…아이스크림‧스낵류에 퍼지는 할매니얼 제품들

꼭 한 번 가보고 싶던 햄버거 가게가 있다. 얼마 전 후배와 함께 마침내 그곳에 들러 각각 버거 세트를 하나씩 주문했다. 결제를 하려는 찰나, 후배가 사이드 메뉴 중 하나를 톡 눌러 추가했다. 따끈한 햄버거 세트 두 개와 종이봉투에 담긴 뜨끈뜨끈한 치즈볼이 나왔다.

맛은 이렇다, 크기는 저렇다, 양념은 그렇다 등등 음식에 대한 의견을 오물오물 주고받으며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반쯤 먹다가 치즈볼 하나를 무심코 베어 먹었다. 달고 진한 인절미 맛이 훅 풍겼다. 우유향이 더해진 말랑하고 쫀득한 이것은 무엇인가. 씹는 순간 입안이 온통 콩가루 범벅이 됐다. 말할 때마다 증기기관차처럼 가루를 뿜게 된다. 웃음이 빵 터지는 맛이었다. 후배는 맛있다고 잘도 먹는데, 나는 한입 베어 먹고 남은 것을 쟁반 젤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맛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다시는 안 해도 될 경험이었다. 내 입맛의 포용력이 바다와 같은 줄 알았는데 겨우 이 정도였다니 씁쓸했다.
할머니+밀레니얼=할매니얼
흑임자가 들어간 ‘비비빅 더프라임 흑임자’. [빙그레 제공]
내가 먹은 치즈볼은 요즘 ‘할매니얼’의 최전선에 있는 것으로 통하는 간식이다. 할매니얼은 할머니와 밀레니얼을 합친 말이다. 2018년경부터 불어온 ‘뉴트로’ 바람과 연관돼 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의 합성어로, 아날로그에 열광하는 새로운 문화를 일컫는다.

할매니얼의 범주는 뉴트로보다 훨씬 좁고 뚜렷하다. 할머니 같은 복장(이른바 ‘할미룩’) 또는 할머니 같은 취향을 주로 가리킨다. 맛 분야에서 할매니얼 트렌드의 대표주자는 흑임자, 팥, 콩가루(또는 인절미), 미숫가루, 쑥 등이다. 요즘 슈퍼마켓 아이스크림 코너에 가면 바로 이런 맛을 강조하는 제품이 즐비하다.

흑임자 빵빠레와 흑임자 비비빅의 고소함은 달콤함이 울고 갈 정도로 진하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한 쪽씩 갈라 먹던 쌍쌍바는 인절미맛을 내놓았다. 진짜 우리 할머니와 다정하게 나눠 먹고 싶은 맛이다. 투게더 역시 흑임자로 새단장했고, 쫄깃한 떡 안에 아이스크림을 채운 찰떡아이스에도 흑임자의 고소함이 더해졌다.

카페에서는 녹차 자리에 쑥을 쑥쑥 넣은 음료들이 눈에 띈다. 쑥 특유의 쌉싸래한 맛과 향을 개성적으로 살리면서 진한 초록색도 강조한 것들이다. 장안의 화제 쑥라테는 떨떠름한 맛이 도드라지지만 우유의 고소함, 시럽의 달콤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부드럽게 느껴진다.
과자에 깃든 할매 감성
할매니얼 마니아를 타깃으로 삼은 ‘아침햇살 흑임자콘’. [웅진식품 제공]
할매 감성은 스낵류에도 깃든다. 이가 깨질 것처럼 딱딱한 옥수수 알갱이 과자가 다시 등장했고, 인절미맛 과자에 크림을 발라 만든 쿠키 샌드도 출시됐다. 작은 제과점에서 직접 만드는 마카롱이나 다쿠아즈(마카롱처럼 달걀흰자가 주재료이나 밀가루와 견과류 등이 들어가 훨씬 폭신하고, 크기도 큰 편인 단 과자)에도 팥, 쑥, 흑임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깨, 콩, 팥, 쑥 등을 생크림, 버터, 크림치즈 등과 섞어 과자나 빵에 맛을 더하기도 한다. 동서양이 조화를 이루는 이 ‘할매식 크림’은 찹쌀떡에 앙금 대신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들 ‘할매’가 좋아할 것 같은 예스러운 재료가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을지 몰랐다. 늘 좋은 향이 나던, 포근한 할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할매니얼 인기를 오래오래 누리고 싶다.

신동아 2021년 5월호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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