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육지로, 한국에서 세계로!제주맥주의 성공전략

마시즘
마시즘2021-08-1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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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제주를 즐기는 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 다른 하나는 제주맥주를 산 뒤 시원한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에 힐링되는 분위기, 그리고 맥주면 여기가 제주도가 아니겠는가(아니다).

한 때는 이 맥주를 사려고 제주도까지 날아갔던 마시즘이다. 이제는 집 앞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니 비행기 값으로 제주맥주를 사먹을 수 있는… 데 네가 텔레비전 광고에 왜 나와?
내가 알던 크래프트 맥주맞냐?
달라진 맥주계의 지형
(제주 감성 가득한 애니메이션으로 소개한 제주맥주 광고)
나만 아는 가수가 멜론, 아니 빌보드에 오르면 이런 기분일까? 텔레비전에 광고를 할 정도로 크래프트 맥주의 세계가 커졌다. 하지만 맥주광고란 모름지기 스타 모델이 나와서 ‘촤하고, 짠하고, 크아하는 것’이 정석인데, 제주맥주는 그러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크래프트 맥주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매번 마시는 맥주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다. 요즘 마트와 편의점에서 ‘수입맥주’의 양만큼이나 ‘크래프트 맥주(a.k.a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양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2017년도에 433억원이었던 크래프트 맥주시장은 지난해 1,180억원으로 성장했다. 한때는 동네맛집 같던 몇몇 크래프트 맥주는 전국구 맥주로 거듭났다.

그중에 ‘제주맥주’가 있다. 올해는 상장도 하고, 광고도 찍고, 월클, 아니 해외진출을 노린다 말한다.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파이어니어(Pioneer)’라고 할까? 하지만 웅대한 꿈을 가진 이 맥주의 시작은 소박했다.
비빔밥을 팔러 나갔다가
맥주에 빠져버린 남자
제주맥주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 때부터 연쇄창업(?)을 하던 문혁기 대표의 사업 아이템이 맥주… 가 아니라 비빔밥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오랜 꿈은 한국의 식문화를 글로벌로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비빔밥 버전의 맥도날드’를 만들기 위해 시카고 땅을 밟았다. 안타까운 점은 당시 미국경제가 금융위기 이후라서 숟가락 들 여유도 없었다는 것.

결국 문혁기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슈퍼에서 맥주를 사 마시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타깝고, 초조… 하기에는 그곳의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이게 무슨 맥주지? 버드와이저가 아니잖아?

그렇다. 미국은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였다. 지역마다 새롭고 신선한 맥주들이 만들어져 슈퍼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또한 맥주와 지역사람들간의 교류가 밀접했다. 이런걸 한국에서 해보면 어떨까?

미국에 비빔밥을 팔기 위해 떠난 남자는 2년간 미국에서 유명 크래프트 양조장을 찾아 맥주 투어를 떠났다.
브루클린 브루어리가 반한
제주맥주의 매력
뉴요커의 맥주 ‘브루클린 브루어리’에 낯선 남자의 제안이 온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아시아 첫 자매회사가 ‘제주맥주’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면 두 브루어리는 추구하는 길이 닮아있다.

1988년에 만들어진 브루클린 브루어리. 이곳의 로고는 I♥NY로 알려진 밀턴 글레이저가 평생 맥주 시음권을 조건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맥주뿐만 아니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예술에 투자했다. 덕분에 ‘마약’, ‘갱’ 등 으스스하게 느껴진 브루클린은 예술가의 도시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또한 이렇게 바뀐 도시의 이미지를 맥주를 통해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던 제주맥주는 어떻게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손을 잡게 되었을까?
(마시즘에서도 가봤던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여행자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그것은 첫 만남에 크래프트 맥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딱 맞았기 때문이다. ‘우선 가까이에서 만든 신선한 맥주가 가장 맛있다’, ‘크래프트 맥주에는 지역의 문화가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크래프트 맥주의 시작은 로컬이지만 끝은 글로벌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문혁기 대표가 고른 브루어리가 태어날 지역은 ‘제주’였다. 수학여행, 신혼여행, 제주살기 등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주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섬이기 때문에 물류문제가 있지만 당시 제주를 방문하는 국내관광객만 한 해에 1,400만~1,500만이었고, 글로벌 진출에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이를 알리기 위해 여러 차례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방문하며 설득을 했다고.

드디어 자매회사가 되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도움과 함께 제주를 대표할 맥주가 짠하고 나올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돋보일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겼다.
(그때는 왜 이렇게 지역명을 딴 크래프트 맥주가 많았을까)
이미 국내의 여러 크래프트 맥주의 이름들이 브루마블 게임하듯 지역명을 달고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잔의 맥주에
제주도를 담은 비결
(맥주 마시러 갔다가 도슨트님의 맥주열정에 취해버렸던 지난 봄)
2017년은 맥주계의 부동산 시대였다. 새로운 맥주가 나오면 꼭 이름이 맥주가 생산된 지역명이었으니까. 문제는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름만 지역명인 위장전입(?) 맥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제품 출시를 앞둔 제주맥주는 이때부터 남다르다 싶은 길을 걷는다.

1. 소품종 대량생산

당시 국내 크래프트 맥주시장은 ‘(라거가 아닌) 얼마나 많은 스타일의 맥주를 만드느냐’가 멋짐의 기준이었다. 크래프트 맥주들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한 생맥주 중심의 판매를 했다.

반면 제주맥주는 ‘제주 위트 에일’ 하나만을 출시했다. 대신에 생맥주 케그 외에도 병맥주, 캔맥주 등 다양한 버전이 나왔다. 패키지를 다양하게 하여 납품할 수 있는 곳들을 넓히고, 이 사람들에게 제주맥주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제품’을 만들자는 전략이었다.

2. 양조장 투어와 맥주도슨트

제주맥주 양조장은 맥주 생산뿐만 아니라 양조장 투어를 계획하고 만들어졌다. 또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맥주의 세계를 안내하는 ‘맥주 도슨트(일종의 맥주 이야기꾼)’를 두었다. 1시간 가까이 투어를 돌고 나면 제주맥주가 더 특별해지기 마련이다. 눈과 귀로 체험하는 제주맥주 양조장은 곧 여행자들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3. 스토리텔링의 대가들

마지막이 귀하다. 제주맥주는 맥주를 가장 제주스럽게 소개하는 곳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제주가 아닌 재해석이 담겨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한라봉 맥주, 조랑말 맥주, 돌하르방 맥주(…)를 보게 되었겠지?

제주 위트 에일은 양조장과 가까운 금능해변과 귤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제주 펠롱 에일은 곶자왈의 푸르름 속에서, 최근 나온 제주 거멍 에일은 제주 밤하늘에서 떠올린 맥주다. 제주맥주는 맥주의 제품이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 어떤 해석을 통해서 맥주를 만드는지를 말한다.
(제주도의 위대한 아웃풋 3대장)
2017년 출시된 제주 위트 에일이 남달랐던 것은 이런 느낌이 한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한 잔의 맥주에 지역을 담기 위해 이처럼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서울시 제주도 육지 상륙 작전
맥주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방법
무언가를 좋아할 때, 우리는 흔히 ‘치인다’는 말을 한다. 바다 넘어 육지… 아니 전국 발매를 할 타이밍이 된 제주맥주에는 사람들이 브랜드의 매력에 ‘치이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것이 제주맥주의 육지 데뷔전 ‘서울시 제주도’ 캠페인이다.
(제주도에 온 것은 난데, 나 빼고 다 제주도에 간 기분을 아시나요)
2018년 연남동 경의선 숲길(일명 연트럴 파크)에 민트색 팝업스토어가 생겼다. 이름하야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이다. 이곳 안에는 제주도의 분위기와 맥주를 느끼고 마실수 있는 구성을 만들어 놓았다. 일종의 출장 제주체험이라고 할까?

한 달간 진행된 이 행사는 소위 대박이 났다. 소셜미디어에는 제주맥주 해시태그만 2만 개가 넘었고, 총방문자는 5만 5,000명이 넘었다. 단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당시 연남동에 출퇴근하던 마시즘이 타이밍도 못 맞추고 제주도에 제주맥주 마시러 떠났다는 것이다(…)
(이후로는 너무 멋져져서 인싸들의 맥주로 떠올라버렸다)
육지 데뷔 무대를 마친 제주맥주는 이후에도 이런 ‘경험 마케팅’을 선보였다. ‘서울시 제주도’ 특집을 한강에서 한다거나, 제주도 한 달 살기, 제주맥주 캠핑카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

제주맥주의 오프라인 행사는 맥주 하면 생각나는 중후하거나, 마시고 마시고 마시는 느낌과는 결이 달랐다. 이런 남다른 감성에 젊은 팬들이 늘어났다고.
다양함에 빠지다
제주맥주 유니버스의 탄생
처음 제주맥주에 대한 마시즘의 생각은 어땠을까? 팬이긴 했지만 ‘제주를 대표하는 맥주를 널리 알리는 브루어리’정도로 생각을 했다. 제품이 ‘제주 위트 에일’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 펠롱 에일이 출시되고, 이후 여러 제품이 나오면서 마시즘의 생각이 자신의 어깨처럼 좁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주 위트 에일은 마블 영화로 치자면 ‘아이언맨’ 정도 되는 작품이었다고 할까?

2018년 여름에 나온 ‘제주 펠롱 에일’은 제주에 다시 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괜찮은 맥주였다. 밝은 빛의 에일맥주를 말하는 ‘페일 에일’을 제주 방언 ‘펠롱(반짝이다)’으로 바꾼 것. 컨셉뿐만 아니라 맛도 괜찮아서 박평식 평론가 같던 맥덕 사이에서도 ‘한국 맥주의 실수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준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
이후에도 다양한 제품들이 나왔다. 마시즘에도 소개된 현대카드와 콜라보를 한 ‘아워 에일’, 톡 쏘는 시큼한 패션후르츠 맛을 살린 ‘제주 슬라이스’ 등이 나왔다.

흑맥주를 위스키에 쓰는 오크통에 숙성시킨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줄여서 제주임스)’도 특별했다. 제주임스는 3,000병 한정으로 나왔는데 이것은 제주맥주가 각을 잡고 만들면 이 정도까지 만든다를 한껏 보여준 작품이었다.
(드디어 완성된 제주맥주 3대장)
올해는 제주 위트 에일과 제주 펠롱 에일을 잇는 세 번째 정규 라인업이 생겼다. 바로 ‘제주 거멍 에일’이다. 지난봄에 제주맥주 양조장에 갔을 때 ‘뭔가 나올 것이다’라고 기대감만 잔뜩주고, 내용은 스포하지 않았던 그 제품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제주맥주 사람들 마블직원 같잖아?

한때는 제주 위트 에일만 떠오르던 제주맥주가 이젠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출시한다. 지역을 대표하게 되었고,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만든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듯 ‘DIVE INTO DIVERSITY'(다양성에 빠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다. 글로벌로 간다!
제주를 넘어 글로벌로
한국 맥주의 제3의 물결은 가능할까?
2017년 약 300만 리터를 생산하던 제주맥주는 이제 2,000만 리터를 생산하는 큰 맥주회사가 되었다. 올해는 한국 맥주 최초로 코스닥 상장까지 했다. 아직 이익을 실현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론칭 후 4년간 여러 도전과 함께 가파른 성장(연평균 148%)을 보여주었기에 상장이 가능했다. 이를 ‘테슬라 상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제주맥주는 내년부터 베트남에 현지 법인과 공장을 만든다. 베트남은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다음으로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나라다. 이곳을 시작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게 아닐까?

맛도 좋아하지만, 제주맥주를 마시는 감정은 남다르다. 이 브랜드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대감이 든다. 제주맥주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기네스를 마시며 더블린을 생각하듯, 브루클린 라거를 마시며 뉴욕을 떠올리듯, 제주맥주는 과연 세계 사람들에게 제주의 여유로움을 선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수제맥주 1000억시대 연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 “올해 흑자 목표”, 박미주, 머니투데이, 2021.7.25.
‘홈술족’ 잡아라···치열해지는 수제맥주 경쟁, 정혜인, 뉴스웨이, 2021.7.23
제주맥주, 맥주광고 불문율 깨고 모델 없는 TV 광고 론칭, 김동현, 뉴시스, 2021.7.1
민간이양 2년만에 제주서 자취 감춘 수제맥주 ‘제스피’, 김정호, 제주의소리, 2021.7.12
상장사 된 제주맥주, 첫 TV 광고에 모델 없는 이유, 안선혜, 2021.7.5, THEPR
제주맥주, 전국 5대 편의점, 대형 마트, 슈퍼 체인에 이어 창고형 마트까지… 전국 어디서나, 강동완, 머니S, 2021.7.5.
“코스닥 찍고 해외진출까지”…게임 체인저 된 제주맥주, 유승호, 뉴스토마토, 2021.6.20
떡잎부터 달랐던 제주맥주, 박규석, 더벨, 2021.5.28
“로컬의 신선함과 스토리 녹인 ‘인생맥주’ 승부수”, 이혜미, 헤럴드경제, 2020.9.14
브루클린과 손 잡은 제주맥주, 1호 제품 런칭, 문준영, 제주의소리, 2017.8.3
브루클린 브루어리 한국 상륙 “제주서 ‘크래프트 맥주’ 만든다”, 김수경, 뉴데일리경제, 2016.5.24
상장 앞둔 제주맥주, 베트남도 간다, 이호승, 매일경제, 2021.4.26
“제주 화산 암반수로 크래프트 맥주 만들 것”, 전수진, 중앙선데이, 2013.11.3
연남동을 휩쓴 민트바람.. 제주를 담은 맥주, 그 이미지의 힘, 최예지, 인터비즈, 2018.10.31
[CEO] 신선한 수제 맥주가 시장 대세될 것, 김효혜, 매일경제, 2021.6.27
“태국 편의점서도 사 마실 수 있는 세계적 맥주로 키워야죠”, 김성윤, 조선일보, 2021.7.26[마케팅人사이트] 적게 쓰고 떠들썩하게 만드는 ‘제주맥주’ 브랜드 마케팅 노하우, 정새롬, Platum, 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