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한 명의 불완전한 인간일 뿐...오은영의 '인생수업'

동아일보
동아일보2021-05-21 10: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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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하고,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 후로도 엄마는 동료나 애인의 스펙을 따져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을 만나 10년간 결혼생활을 했지만 아이 낳기가 두렵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남편과 아이가 자기 때문에 불행해질까 봐.

뒤틀린 관계로 살아가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소통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56)가 나섰다. 가정의 달을 맞아 채널A가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금요일 오후 8시)에 이어 내놓은 ‘요즘 가족 금쪽 수업’(일요일 오후 7시 50분)을 통해서다. 오 박사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배우 신애라가 차례로 실제 사연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강연 형식이다. 8일 첫 방송 이후 두 번째 방송 만에 ‘치료 받는 기분’이라는 호응이 나오고 있다.
사진=오은영 박사 블로그
20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오 박사는 “많이들 좋은 영향을 받으셨다고 하니 자체 평가로는 ‘지축을 흔들었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런 그의 소감은 예능계의 현주소와 맞닿아 있다. 연예인 가족이 나오는 오락형 육아 프로그램만이 가족 예능의 맥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강연 형식의 가족 예능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는 “시청률만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코로나19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시기에 자신과 가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금쪽’ 시리즈는 작품별 차이를 통해 위로의 폭을 넓힌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금쪽 수업’은 성인이 된 나를 이해하기 위해 삶을 되돌아보는 인생 수업에 가깝다. 16일 방송에서 배우 이윤지가 “부정적인 감정 표출이 어렵다”고 상담하자 오 박사는 “부정적 감정도 나쁜 게 아니다. 그동안 착하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어릴 때도 듣지 못했던, 그리고 어른이라 더 듣기 힘든 위로였다.
채널A ‘요즘 가족 금쪽 수업’에서 정신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왼쪽)가 더 나은 가족이 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함께 출연한 정형돈, 홍현희, 이윤지가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프로그램은 육아 예능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의 스핀오프(파생) 프로그램이다. 채널A 제공
오 박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이 시절에 자신을 투영해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장단점을 이해하게 된다”며 되돌아보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문제를 부모 탓, 가정 탓으로만 돌리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 부모는 자식을 사랑했지만 그 방법이 잘못됐을 거다. 용서하란 말은 아니다. 그저 부모를 ‘불완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약점은 있으니 대화하고 깨우치면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방송과 강연 등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며 오 박사는 지금 시대 가족에게는 감정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그는 “시대에 따라 가정환경은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부모는 자식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자식은 부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기대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육아 회화’를 강조한다.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라고 말하기보단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해’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전자처럼 말하면 알아듣고 분발할 거라 착각하지만 감정이 상할 뿐이다. 오늘 하루 한마디만 달라져도 나중에는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며 실천해보기를 권한다.

그는 가족의 기본은 ‘마음을 나누는 인생의 대화를 하는 관계’라고 말한다. 힘들 때 진솔하게 버팀목이 되어줄 거란 바람이 있기에 엄마, 아빠, 아이를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일렁인다. 금쪽 시리즈를 통해 저마다의 상처를 극복하고, 따듯하게 결속돼 있는 동시에 각자 개인으로 존중해주는 가족이 늘고 있다. 별다를 것 없어도 매회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이유일 테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