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나고 가슴 답답해 쓰러지던 영조에게 입맛 찾아준 '이것'

동아일보
동아일보2021-03-2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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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미나리’가 많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실제 미나리는 한국인의 강인한 근성을 잘 드러내주는 특별한 채소다. 연꽃처럼 더러운 물을 정화하면서도 사철 청정한 푸른빛과 향기를 유지한다. 악조건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는 한국인의 악바리 근성을 똑 닮았다.

남도의 봄은 미나리와 함께 온다. 미나리를 된장에 찍어 구운 삼겹살과 함께 먹으면 입안 가득 봄의 향기가 퍼진다.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한의학에서 봄의 색깔은 푸른색이다. 식물들은 겨우내 땅속에 움츠려 있다 자기보다 몇백 배 무거운 흙을 밀어 올리고 새싹을 틔운다. 예부터 조상들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이 거대한 봄의 기운을 ‘청룡’이라 불렀다. 봄의 빛깔인 푸른색과 힘의 상징인 용이 합쳐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왕들은 우주의 마음인 음양오행을 토대로 한 12첩 반상과 오색(五色)과 오미(五味)를 밥상의 법도로 삼았다.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보다는 성리학적 군주론의 바탕인 도덕적 밥상을 선택했다. 이기심보다는 중용의 선정을 베풀겠다는 철학이 왕의 밥상에 담긴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왕에겐 도덕적 수행이었다.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푸른색 미나리의 ‘미’는 물을 뜻한다. 미리내(은하수)의 ‘미’, 미더덕의 ‘미’도 같다. 은하수는 ‘별의 강’이고 미더덕은 물에서 난다. 한자로도 수근(水芹)이다. 봄철 나무는 물이 올라야 성장한다. 물은 봄을 생생하게 살아 오르게 하는 든든한 뒷배다. 미나리는 봄의 기운을 물을 통해 우리 몸에 전달한다. 간의 기능을 도와 춘곤증을 없애는 좋은 채소다. 단순한 식도락에도 봄을 준비하는 깊은 지혜가 숨겨져 있다.

미나리에 얽힌 고사도 있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 바로 그것. 숙종 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권력투쟁 당시 대중은 인현왕후를 사철 푸른 미나리에 빗대 편을 들었다. 사실 숙종은 즉위 초기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황달을 앓으며 고생했다. 심지어 생을 마감할 때도 간경화 증상을 보였다. 미나리는 간 질환을 앓던 숙종에게 꼭 필요한 채소였던 점을 생각하면 이 고사의 의미는 더 크다.

영조는 채소와 보리밥으로 담백한 식사를 즐겼다. 재위 40년이 넘어가자 번열로 자주 쓰러졌고 입맛을 잃었다. 금주령을 내린 장본인이었지만 막상 자신의 몸에 이상이 발생하자 체력을 살려내기 위한 치료처방인 ‘통순산’에 술을 넣도록 허용했다. 그럼에도 쉽게 입맛이 돌아오지 않자 미나리를 약식으로 처방받아 결국 입맛을 되찾았다.

실록에 따르면 미나리는 종묘제사에 올라갈 만큼 중요한 음식이었다. 당나라의 의서 ‘식료본초’는 지금과 달리 “미나리를 술이나 장에 담그면 맛이 좋다”고 했다. 실제 미나리를 부추 순무와 더불어 근저라는 김치로 담가 제사상에 올렸다. 진상품으로는 남원의 미나리가 올려졌다. 줄기에 공동이 없고 향기가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의서 ‘천금요방’ 등에도 “미나리는 생것의 즙을 내 먹거나 꿀을 타서 먹으면 황달에 도움이 되며 근력을 키워준다”고 썼다. 그 외에도 장운동을 활성화시켜 변비를 없애고 식욕을 도우며 여린 줄기는 고혈압에도 도움을 준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