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바수라마(Basu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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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0-11-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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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 프로젝트, RUS Niamey /Basurama 공식 홈페이지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흔히 재활용이란 단어는 익숙하지만 업사이클링, 일명 새활용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생소할 수도 있다. 새활용은 폐품이나 쓰레기를 새롭게 디자인해 가치있는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쓰레기장으로 향할 뻔한 쓰레기를 개개인의 창의력을 이용해 용도를 바꾸거나 새로운 아이템 등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뚜껑이 깨진 주전자가 있어 그것을 버리지 않고 펜과 연필을 보관하는 필통으로 쓰기로 했다면 이것은 훌륭한 새활용의 예가 된다. 폐기물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것만으로는 생활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자각이 일어나면서 이 새활용이 대안으로 제시되며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새활용이란 용어는 1994년, 예비 교사였던 라이너 필즈가 당시 독일의 재활용에 대해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중에 처음 등장한다. 라이너는 비싼 수입 건축자재 대신 버려진 목재를 이용하면 돈도 절약하고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활용이 우리가 필요로 하던 것이며, 오래된 제품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 단어로 명명되기 전부터 새활용은 계속 사람들의 일상에 존재해 왔었다. 단지 새활용이란 이름만 없었던 것 뿐이지, 낡은 커튼을 쿠션 커버로 쓰거나 팔레트로 쓰던 오래된 나무를 새로운 가구로 만드는 것 등의 모든 활동이 새활용이었다.


바수라마, 새활용은 그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놀이' 이다
바수라마의 일원들 /Basurama 공식 홈페이지
바수라마는 이 새활용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스페인의 업사이클 아티스트 그룹이다. 8명의 건축가들로 시작한 이 예술가 집단은 쓰레기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중점으로 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대량 생산에 대해서, 새로운 사고를 고안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들의 활동은 사회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쓰레기의 발생, 그리고 그 쓰레기들의 창조적인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수라마(Basurama)는 스페인어로 Basura(쓰레기)와 Ama(‘사랑하다’라는 뜻의 Amar)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대학 시절 비싼 재료를 대신하기 위해 쓰레기를 뒤졌던 게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8명의 건축가들이 모여 시작된 이 그룹은 현재 100여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유럽부터 시작해 남미 지역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들을 모아 그것을 다시 사용 가능한 물건들로 만들고 있다. 그들이 내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워크숍, 행사, 대회, 출판물 등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나온다. 바수라마의 최종 목표는 시민들에서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계층과 함께 새활용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공통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페루의 리마 공원 /Basurama 공식 홈페이지
바수라마는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해변 쓰레기를 모아 플라스틱 조형물을 만들고, 멕시코 시티로 가서 쓰레기를 모아 자전거처럼 페달이 달린 특별한 차를 만들었다. 마이애미의 오래된 스피커와 자동차 부품을 조합해 음악이 흘러나오는 기계를 만들고, 아르헨티나에서 판지를 모아 공공조형물을 만들었다. 페루의 철도가 있는 고가도로 주변의 한 공원은 낡은 타이어로 만든 그네가 설치되고, 로프로 만든 미끄럼틀이 놓였다. 벽에 칠해진 그래피티와 함께 이 공간은 곧 놀이공원으로 바뀌어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놀 수 있었다.
마드리드의 백야 /flickr
스페인 마드리드엔 가구가 버려지는 날이 따로 있다고 한다. 축제 준비로 분주하던 중, 바수라마는 버려진 가구들을 모아 즉석 극장 공간을 만들고 거실처럼 보이는 공간을 꾸몄다. 한쪽엔 어디서 주워오거나 사람들에게 받은 헌옷가지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헌옷들은 곧 색색으로 분리되어 아름다운 대형 커튼으로 바뀌었다. 축제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많아지고 광장도 시끄러워지면, 이제 이 공간은 쓰레기들의 축제로 변한다. 옷들을 보던 사람들은 탐나는 옷을 언제든지 주워갈 수 있었다. 쓰레기였던 헌옷은 바수라마와 만나 다시 새 생명을 얻고, 새 주인도 얻는다.
쓰레기들의 규모에 압도당할 것 같다 /flickr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남쪽에 있는 베니카심 해변에 음악 축제가 열렸다. 3박 4일의 축제 기간 동안 해변 구석엔 시청의 협조를 받아 한 대형 쓰레기통이 만들어진다. 해변에 설치된 쓰레기통 위로 쌓인 쓰레기는 바수라마가 나흘 동안 주워 모은 쓰레기의 일부다. 바수라마는 거대한 구조물에 가득 찬 쓰레기의 엄청난 규모를 사람들이 보고 뭔가를 느끼길 바랬다. 적어도 이 커다란 쓰레기 더미를 본 사람들이 한동안은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지 않았을까.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풍경 /flickr
이 넘실거리는 파도는 오로지 페트병으로만 만들어졌다. 남미의 한 바닷가와 가까운 이 도시는 해변에 버려지는 쓰레기들이 시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해변에 쓰레기가 굴러다녀도 신경쓰지 않았고, 이 페트병 쓰레기들은 당국조차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바수라마는 이 버려진 페트병을 모아 깨끗하게 씻어 와이어 줄에 하나씩 엮었다. 색을 구분해 엮인 이 페트병들은 완전히 다른 사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구조물을 보며 저 페트병을 어떻게 다 모아 만들었는지를 감탄한다. 나중에 이 구조물은 다른 해변을 옮겨 다니며 전시가 된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일깨워주기 위해.
버려진 것들은 바수라마에게 보물이 된다 /flickr
어떤 물건은 누군가가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할 때 쓰레기가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이 그 물건의 잠재력을 알아본다면 끝난 줄 알았던 물건의 수명은 극적으로 되살아난다. 바수라마에게 현대 사회는 쓰레기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물에 둘러싸여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버려진 것들을 가치있게 만들고, 쓸모있게 만드는 것이 바수라마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새활용은 어떤 규칙이 없다, 그저 즐기며 만들면 되는 일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저마다의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서울디자인재단
바수라마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종종 한국에서 워크숍과 포럼을 개최했고, 최근엔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새활용 놀이문화 확산’을 주제로 영상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바수라마처럼 새활용을 주제로 여러 활동을 하는 곳들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새활용에 대한 모든 걸 보고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새활용 복합 문화 공간인 서울새활용플라자가 있으며 청주시에도 자원의 재생과 공유를 위해 세워진 청주새활용시민센터가 있다. 이렇게 지역마다 전문적인 새활용센터를 세우는 등 새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일반 시민들도 새활용 플리마켓,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곳에 참여하며 쓰레기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더이상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식해 가고 있다.

새활용은 무언가를 거창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바수라마에게 새활용은 그저 하나의 놀이 문화인 것처럼, 쓰레기 자체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사람에겐 쓰레기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겐 보물이 될 수도 있다. 새활용된 아이템은 누군가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수 있고 또 그것을 누군가에게 새로 팔 수도 있다. 새활용은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게 만들고, 상점에서 살 수 없는 유니크한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