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년차 셜로키언이 추천하는 셜록홈즈 시리즈 *덕력주의*

29STREET
29STREET2020-08-07 18: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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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합니다. 나이가 한 자릿수였을 때부터 취미가 뭐냐는 물음에 ‘독서’라고 대답해 왔던 에디터 LEE, 사실 올해 들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올 여름 휴가에는 책 좀 읽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올 여름 픽은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셜록홈즈 시리즈입니다. 원래 여름에는 스릴 있는 추리소설이 잘 어울리잖아요. 사실 에디터 LEE본인이 셜로키언(셜록덕후)라서 또 읽고 싶다는 건 안 비밀! 홈즈 시리즈는 장편 4편에 단편은 무려 56편에 달하는데요. 물론 이 많은 걸 한번에 다 읽을 순 없죠.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며 장편 위주로 재미있는 작품들을 추천해 드립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홈즈 시리즈는 처음 출판된 지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2차 창작물의 바탕이 되어 주고 있다. 사진은 영국드라마 '셜록'에서 셜록홈즈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어느 새 셜록홈즈 하면 이 배우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진=BBC 'Sherlock' 웹사이트
탐정의 대명사, 전설의 시작
특이한 모자에 망토 차림, 입에는 담배 파이프를 물고 손에는 돋보기를 든 날카로운 인상의 신사. ‘탐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인데요. 이 이미지를 만들어 낸 명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는 영국 작가 아서 코난 도일(1859~1930)경이 탄생시킨 캐릭터입니다.

원래 추리소설보다 역사소설작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코난 도일. 1887년 홈즈가 등장하는 첫 단편 ‘주홍색 연구’를 발표했지만 큰 반응은 얻지 못했습니다. ‘별로 인기도 없고 돈도 안 되는데 홈즈 시리즈 접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3년 후인 1890년 두 번째 단편 ‘네 사람의 서명’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셜록 홈즈의 모험’ 이라는 단편집도 나오고, 코난 도일은 운영하던 개인병원을 완전히 정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될 사람은 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성공 스토리죠.
1887년 발표된 '주홍색 연구' 표지와 삽화.
주홍색 연구(1887, 장편) / A Study in Scarlet
경찰청 고문탐정으로 활동하던 홈즈를 따라 사건현장으로 간 왓슨. 현장에는 상처 하나 없는 시신이 누워 있고 그 옆에는 반지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벽에는 붉은 글씨로 ‘Rache’ 라고 쓰여 있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경찰과 달리 홈즈는 사건 현장을 관찰하더니 피해자의 사인(독극물)은 물론 가해자의 연령, 키, 습관까지 곧바로 알아내어 말해줍니다. 홈즈의 추리로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던 도중 피해자의 밑에서 일하던 또 다른 남자가 살해되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범행 동기는 무엇일까요?

셜록홈즈 전설의 시작인 ‘주홍색 연구’는 2010년 BBC 드라마 ‘셜록’의 첫 에피소드 ‘분홍색 연구(A Study in Pink)’로 재현되었다. 사진=BBC 'Sherlock' 공식 유튜브 채널
홈즈의 놀라운 관찰력과 ‘비상식적 지성인’이라는 캐릭터성은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부터 뚜렷이 묘사됩니다. 홈즈 시리즈는 거의 전부가 홈즈의 친구 존 왓슨 박사의 1인칭 서술로 진행되는데요. 왓슨은 사람의 겉모습과 행동만 보고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줄줄 읊는 홈즈의 관찰력에 탄복하면서도 태양계에 무슨 행성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를 정도로 편향된 지식세계에 기겁합니다. 상식이 결여된 천재 홈즈는 사람의 뇌 내 공간은 한정돼 있기에 꼭 필요한 지식들로만 채워야 한다는 자기만의 지론을 펼치곤 합니다.

네 사람의 서명(1890, 장편) / The Sign of Four
코난 도일에게 대박을 안겨준 작품. 왓슨에게 있어서는 로맨스 소설(?) 이기도 합니다. 사건 의뢰자 메리 모스턴과 ‘썸’을 타다 결혼까지 하기 때문이죠.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메리는 10년 전 아버지인 모스턴 대위마저 행방불명되며 천애고아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뒤로 매년 메리 앞으로 진주가 한 알씩 배달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늘 저녁 7시에 만나자’는 정체불명 편지까지 도착합니다. 불안해진 메리는 홈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홈즈와 왓슨은 메리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 나섰다가 보물에 얽힌 살인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코난 도일은 사실 홈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홈즈는 캐릭터로서는 매력적이지만 실제 사람이었다면 그다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타입입니다. 하숙집에 세들어 살면서도 방을 지저분하게 쓰는 건 기본이고 사건이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로 마약(코카인)을 하다가 왓슨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합니다(왓슨의 인내력과 참된 우정에 박수를).

하지만 본성은 선량한 홈즈.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의뢰비를 아예 받지 않고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서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줍니다. 이렇듯 괴팍한 천재가 중간중간 보여주는 반전 매력은 당시 독자들의 마음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셜록 홈즈가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할 정도였으니까요. 

사진=채널A '하트시그널' 캡처
홈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코난 도일의 집필 활동도 바빠졌습니다. 그는 1894년 새 단편집 ‘셜록 홈즈의 회상’을 출간했지만 이 무렵 홈즈 이야기를 그만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코난 도일 본인이 추구하던 분야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진지한 역사소설이었으니까요. 좋게 은퇴시키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코난 도일은 홈즈를 아예 없애 버리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지요.

결국 단편 ‘마지막 사건(1893)’ 에서 홈즈는 숙적인 범죄자 모리어티와 알프스 산 속에서 대결하다가 라이헨바흐 폭포 밑으로 떨어져 행방불명됩니다. 책이 나오자 당연히 영국은 물론 해외의 열혈 독자들까지 난리가 났습니다. 항의 편지가 쏟아지고 출판사는 애걸복걸, 심지어 코난 도일의 어머니마저 편지에 “아들아, 왜 홈즈를 죽였니?”라며 서운해 했을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쓴 소설 등장인물 하나 죽였다가 평생 먹을 욕 다 먹고 불효자까지 되고 만 코난 도일. 아차 싶었는지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데…

죽은 줄 알았던 홈즈, 귀환하다
1939년에 영화화된 '바스커빌 가의 개'의 한 장면. 배우 바질 래스본(Basil Rathbone)이 홈즈 역을 맡았다. 사진=유튜브 ' Linden Adkins'
바스커빌 가의 개(1901, 장편) /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셜록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명작으로 손꼽히는 ‘바스커빌 가의 개’는 ‘마지막 사건’과 ‘빈 집의 모험’ 사이에 출판된 작품입니다. 홈즈가 죽었다는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던 독자들의 맹렬한 항의에 못 이긴 코난 도일이 왓슨 박사의 회고록 형식으로 써 낸 장편인데요. 헬하운드(지옥견)이 나타난다는 전설이 떠도는 다트무어 황무지를 배경으로 바스커빌 가문에 닥친 비극을 밝혀내는 홈즈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음침한 황무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묘사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까운 인상을 줍니다. 으스스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전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책입니다.

빈 집의 모험(1903, 단편) / The Adventure of the Empty House
팬들의 성원(그리고 협박) 덕분에 홈즈는 10년 만에 단편 ‘빈 집의 모험’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셜록홈즈 시리즈 새 작품이 나온다는 소식에 열혈 팬들은 출판사 앞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팬심이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사망한 줄 알았던 홈즈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2년 동안 어디서 무얼 하느라 친우 왓슨에게조차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는지 등 많은 궁금증이 해소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춤추는 사람(1903, 단편) / The Adventure of the Dancing Men
노퍽 주 지역 유지 힐튼 큐빗 씨는 미국인 아내 엘시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집안에서 아이들 낙서 같은 사람 그림이 발견되고, 아내는 그림을 보자마자 기절할 정도로 놀라며 나날이 근심걱정으로 쇠약해져 갑니다. 분명 그림에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물어봐도 입을 열지 않는 아내. 집안에서는 계속 그림문자가 발견됩니다. 신경 쓰여 견딜 수 없게 된 힐튼은 홈즈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몇 주 뒤 홈즈가 그림문자의 비밀을 풀어낼 실마리를 잡았을 무렵 힐튼은 아내의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과연 진상은 무엇일까요?

엘시를 기절하게 만든 '춤추는 사람' 그림 암호문. 무슨 뜻인지는 직접 소설을 읽어보자!
추리물 하면 떠오르는 ‘암호문’을 소재로 흥미롭게 사건을 풀어낸 이 작품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 중 하나입니다. 글 자체만 놓고 보면 짜임새 있고 재미있지만 안타깝게도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 풍뎅이(The Gold-Bug, 1843)’에 나오는 암호구조를 거의 똑같이 사용해 논란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장편 4편, 단편 56편… 전집 독파 도전해볼까
총 60편에 달하는 셜록홈즈 시리즈는 단편 빼고 장편만 읽어도 4권(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 바스커빌 가의 개, 공포의 계곡)입니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우리나라에도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요. 황금가지 출판사와 문예춘추사에서 출간한 전집이 대중적이고 읽기 편합니다.

황금가지판 셜록홈즈 전집은 장편을 앞부분에 몰고 뒤에 단편들을 배치했습니다. 중간중간 번역 오류가 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문예춘추사 판 전집은 황금가지 버전과 달리 원작이 출판된 순서대로 작품을 배치해 원작 흐름대로 따라가며 읽기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시간과공간사, 엘릭시르, 인트랜스번역원 등 다양한 곳에서 번역본을 출간했습니다. 

한때는 자기 손으로 홈즈의 운명을 끝내버렸던 코난 도일도 마지막 작품에서는 ‘홈즈 덕분에 나 자신도 발전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수십 년 간 동고동락하며 결국 정이 들고 만 걸까요. 코난 도일과 홈즈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이 시리즈에는 19세기 말~20세기초에 걸친 시대상도 골고루 담겨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올 여름 읽을 셜록홈즈 시리즈,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일단 한 권 질러놓고 생각하자고요.😜

에디터 LEE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