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체크인에 쓴 돈만 1년에 2000만원.. "인생 전부를 올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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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1-06-21 1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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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전문 리뷰어 '체크인(CHECKIN)' 정재형 씨 인터뷰
호텔에서 숙박하는 게 직업이라고 해야할까. 전국의 호텔에서 숙박하기 위해 쓴 돈만 1년에 2000만 원. 속속들이 파헤쳐본 호텔의 수만 100여 곳에 이른다. '호텔 리뷰'라는 한 우물을 파다보니 출간도 하게 됐고, 강의와 기업 협업도 진행하는 등 나름의 유명세도 생겼다. 오늘도 호텔에 체크인 하는 남자, ‘호텔 전문 리뷰어 체크인(CHECKIN)’ 정재형 씨를 비대면 인터뷰로 만났다.
“(원래) 스트레스로 퇴근 후에는 술 마시기 바쁘고, 다음날엔 숙취에 시달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수혈하던 직장인이었어요.”
올해 서른 살의 정 씨는 원래 대기업 종합광고대행사와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브랜드 디자이너였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둔 건 1년 전인 29세 때. ‘서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마법 때문일까. 29세의 그는 “마지막 20대,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은 도전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퇴사를 감행했다. "망하면 그 때가서 생각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회사를 떠난 후 그가 설정한 꿈(목표)은 ‘호텔을 세우는 것’. 호텔 전문 리뷰어라는 타이틀은 호텔을 세우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한다.
호텔을 세우려고 호텔을 리뷰한다
호텔 전문 리뷰어 '체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재형 씨. ⓒ체크인 인스타그램
리뷰를 위해 호텔에 쓰신 돈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쓰셨나요.

"퇴사할 때 받은 퇴직금과, 직장생활 하면서 모은 돈을 거의 다 썼다고 보시면 됩니다. 2000만원 이상 쓴 것 같네요. 처음엔 ‘이렇게 막 써도 괜찮은가?’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텔을 한 곳이라도 더 가려고 좋아하던 쇼핑을 끊고, 술자리도 줄였습니다. 지금 쓰는 모든 비용은 호텔을 세우기 위한 ‘투자금’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혹 ‘혹시 금수저세요?’ 라는 질문도 받는데요. 제가 정말 금수저였다면 부동산을 먼저 알아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웃음)"

직접 호텔을 세우려고 하신다고요?


"네. (‘체크인’으로 활동하기 전)이직을 위한 포트폴리오에 ‘가상의 호텔 브랜드’라는 주제를 잡아놓고 신나게 작업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라? 진짜로 내가 호텔을 세우면 어떨까?’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문제는 돈, 건물, 땅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꿈만큼은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꼭 이뤄내고 싶었죠. 그래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직접 호텔에 가보고, 컨텐츠를 만들고, 책을 읽으며 공부한다.’ 이 3가지가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습니다. 호텔을 세우기 위해 호텔을 돌아다니고, 온라인에 기록을 남기고,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그렇게 ‘체크인’이 탄생했습니다. 호텔 리뷰를 비롯해 제가 하고 있는 활동들은 모두 호텔을 세우기 위한 과정들입니다."
직접 가 본 100여 곳 호텔 중 최고를 꼽자면…
다양한 호텔 리뷰 컨텐츠들 ⓒ체크인 인스타그램
1박에 100만원이 넘는 반얀트리 호텔 투숙 리뷰, 10만원 가성비 호텔 리뷰, 노을이 예쁜 호텔뷰 모음, 내 방보다 넓은 호텔 화장실 모음, 욕조가 있는 호텔 추천 등 체크인의 호텔 리뷰 포인트는 꽤 다양하다. 실제로 숙박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A호텔에서 수영장이 한산한 시간' 같은 소소한 꿀팁도 재미를 유발한다. 리뷰에 "호캉스 갈 호텔을 여기서 찾아 본다" "리뷰 보고 예약했다"는 팬들의 댓글이 한가득인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

호텔 리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리뷰를 작성할 때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같은 공간을 가더라도 누구는 좋았다고, 누구는 별로였다고 하잖아요. 그 날의 날씨, 분위기, 나의 감정 상태, 직원의 컨디션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이 되죠. 그래서 ‘좋다’, ‘나쁘다’로 나눠 리뷰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 생각합니다. 제가 전달한 어떤 정보를 보고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점점 더 많은 분들에게 저의 콘텐츠가 노출이 되는 만큼 세심하게 신경을 쓰려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숙박을 할 때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호텔은 분명 저마다 세워진 이유가 있고,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곳에 가면 흥미로운 것들도 많이 발견되죠. 저는 호텔을 세우기 위해 호텔을 돌아다니는 사람이기에 ‘이 호텔은 왜 세워졌을까?’, ‘왜 이런 디자인을 했을까?’, ‘배치는 왜 이렇게 했을까?’ 등을 항상 질문하고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제겐 시설, 위치, 금액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가 본 호텔만 100곳이 넘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이나 별로인 곳은 어딘가요?


"1박에 3만원짜리부터 시작해 100만원이 넘는 곳까지 다양한 호텔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느낀 점이 있죠. 호텔도 사람과 같아서 각자 가진 성격과 색깔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호텔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매번 같은 호텔을 언급합니다. 바로 ‘핸드픽트 호텔’입니다.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핸드픽트 호텔. ⓒ체크인 브런치
이 호텔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곳인데요. 영국 모노클지가 선정한 ‘전세계 100대 호텔’에 한국 최초로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럭셔리 호텔도 아니고 시설도 최신식, 최고급은 아닙니다. 이 호텔의 가장 큰 특징은 호텔이 지역에 스며들었다는 점입니다. 로컬 감성이 느껴지죠. 이 호텔은 서울 상도동에 스며들었습니다. 지역주민 재방문율이 45%에 육박한다고 해요. 호텔 내 식당의 재료 수급은 노량진 시장에서 하고, 조식은 매일 다른 한식 메뉴로 제공됩니다. 지역주민들이 호텔이란 공간에 거부감없이 편하게 드나드는 건 기존 국내 호텔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또 개인이 하는 호텔 사업이라는 점에서 저에겐 롤모델 같은 곳입니다."
좋아하는 일에도 권태기는 찾아온다
왜 호텔을 좋아하세요?

"사실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도 2주에 1번씩은 호텔에 가곤 했습니다. 그 때는 목적없이 그저 좋아서 간 것이었죠. 저는 호텔에 가면 ‘이 호텔 디자인은 왜 이럴까?’, ‘구조는 왜 이렇게 했을까?’, ‘이 위치에 이게 왜 있을까?’ 라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나중에 호텔 정보를 찾아 봤을 때, 제 생각과 일치하면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일종의 쾌감에 가까웠습니다.

호텔은 저에게 있어서 연구대상입니다. 보통 우리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 최소 1주 이상은 사용을 해봐야 나와 잘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 할 수 있죠. 그러나 호텔은 체크인(15시)~아웃(12시)하는 21시간동안 투숙객을 팬으로 만들기 위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 갑니다. 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이건 브랜드 디자이너라는 제 직업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은 요즘 세대가 가장 가치를 두고 있는 것 중 하나잖아요. 많은 직장인들이 이를 위해 퇴사를 꿈꾸지만 아무나 성공하긴 어렵고요.


"저는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도 생각을 깊게 하는 편도 아닙니다. 그래서 실패한 프로젝트들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하려면 시도를 해야 하잖아요. 성공은 물론 실패조차 해 본적 없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거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뛰어듭니다. 그게 실패를 하던 성공을 하던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움직입니다. 아마 그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가장 큰 비결 아닐까 합니다."
호텔 객실은 그에게 직장이나 다름없다. ⓒ체크인 브런치
그래도 한때는 그렇게 좋아하던 ‘호텔에 질려버린’ 시기가 있으셨다고요.

"호텔을 한참 많이 갔을 때는 일주일에 4-5곳을 갔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4시까지 일을 하다가 오전 11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있었는데요. 한 커플이 “이번 호캉스도 너무 좋았다. 다음에 또 쉬러 오자”고 말하는게 귀에 들어오더군요.

행복한 모습을 보며 ‘아차’ 싶었습니다. 호텔이 좋아서, 호텔을 세우겠다는 꿈이 생긴, 호텔을 다니고 있는 나는 과연 지금 행복한가? 그렇지 않더군요. 그 때 ‘권태기'가 왔습니다. 호텔에 인생 전부를 올인했는데, 권태기가 찾아오니 머리가 너무 아프더군요. 그래서 어떻게든 극복하려 호텔을 더 열심히 갔지만 체크인 횟수가 늘어날 수록 호텔이 더 싫어졌습니다. 그 때가 가장 위기였어요.

당시 제가 내린 결론은 ‘호텔과 잠시 거리를 두자’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우 3주 호텔을 안가니 다시 몸이 근질근질 해지더군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태기는 찾아옵니다. 제가 권태기를 극복한 방법은 ‘잠시 내버려 두는 것’이었습니다."
호텔리뷰어의 먹고 사는 방법
호텔 리뷰로 돈을 벌 수 있나요?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기가 가능한지, 지금 경제 활동 상황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 두 달 만에 돈을 벌 생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한다면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겁니다. 저는 호텔에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다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죠. 점심으로 3000원짜리 국수를 먹어야 하나 삼각김밥 2개에 음료수를 먹어야 하나 고민했던 날도 있습니다. 1박에 수 십만 원짜리 호텔에 드나드는데 점심 값이 없다니... 코미디 같기도 하고요.

그러나 돈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디자인) 외주 작업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죽기 밖에 더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계속 호텔에 가고 컨텐츠를 만들어 올렸습니다. 그걸 반복하니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로 바뀌더군요. 더 재미있는 건 잘하는 일이 되어버리니 내가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곧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죠.

월 1000만원씩 버는 분들도 있지만, 솔직히 아직 저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집중하고 있는 건 딱 한가지 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 제가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면 더 큰 돈은 알아서 따라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웃음)"
최근 그는 "될 때까지 버텼다"며 호텔 리뷰에 집중한 성과들을 자축하기도 했다. ⓒ체크인 인스타그램
정 씨는 오는 7월 말, 호텔을 주제로 한 첫 책을 출간한다. 그 밖에 유료 콘텐츠 플랫폼에 호텔 브랜딩 인사이트 관련 글도 기고하고 있고, 콘텐츠 제작에 대한 온라인 강의도 한다. 기업 혹은 호텔을 설득해 저렴한 호텔 패키지를 기획하는 ‘네고 프로젝트’ 등 협업도 활발하다. 협찬이나 광고도 리뷰의 객관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하고 있다.

호텔 리뷰 콘텐츠를 쓰는 것 외에 많은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단순 리뷰어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체크인 활동 초기에는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 쉽게 알리기 위해 ‘호텔 리뷰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활동 반경이 초기에 비해 대폭 넓어져서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까 찾는 중입니다."

일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호텔을 다니고 있으며 여전히 호텔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제가 가진 능력들을 활용하여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가치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일의 무게중심은 그대로 입니다."
3년 뒤에 호텔을 세우는 것이 목표
체크인 활동 1년, 그는 호텔 설립이라는 꿈을 위해 올 한 해 좀 더 공격적인 활동으로 몸집을 키울 예정이다. 브런치, 인스타그램 외에 유튜브로도 영역을 넓힐 예정이고, 뜻이 맞는 기업들과의 협업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라고.
정재형 씨는 최근 '체크인'으로서의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체크인
어떤 호텔을 세우고 싶으세요?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가 될 호텔을 만들고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크리에이터는 ‘유튜버', ‘인플루언서'만이 아닙니다. 전 각자의 삶을 디자인하고 창조하는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모였을 때, 크리에이티브가 생기고, 그 크리에이티브가 세상을 앞으로 움직인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런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호텔을 세우고 싶습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퍼블릭 공간에 모여 인사이트를 주고 받고, 각종 클래스도 열리고요. 다른 한 켠에선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겠죠. 핵심은 남 눈치 보지 않고 ‘나를 표현하며,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객실은 철저히 프라이빗한 공간입니다. 그 곳에선 아이디어를 쏟아내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 주며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
"생각과 영감이 필요할 때 떠오르는 호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제가 세울 호텔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어느정도 그 목표에 다가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여러 호텔 대표님들을 만나며 귀한 노하우를 듣고 있습니다. 또 공간 운영에 대한 경험도 필요할테니, 제 호텔에 들어갈 카페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운영을 해볼 예정이기도 합니다. 당장 호텔부터 세우기 보다는 제 호텔에 들어갈 브랜드들을 하나 둘 미리 만들어 놓고 나중에 한 군데로 모으려 합니다.

우선 3년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3년이면 사실 호텔을 올리는데 그렇게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간을 정해야 제가 부지런히 움직일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될진 저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세울 거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호텔이 핫플레이스가 될 거란 것도요. (웃음) 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응원해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호캉스 러버’분들에게 오늘도 어김없이 감사를 전합니다.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